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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4일, 반경기차가 나는 1위 기아와 2위 두산. 기아는 한화에 6:0영봉패를 당하고 2위 두산은 KT에게 아슬아슬한 승리를 지켜냈다. 그렇게 2017 KBO 1위 자리는 두 팀이 공동으로 차지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2009년 가을, 당시 수험생이었던 나는 '야자'를 하던 교실을 도망쳐 기숙사로 향했다. 나에겐 수능시험 준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SK와이번스와 KIA타이거즈가 만나는 2009 한국시리즈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수험생 눈치에 직관을 가지는 못했지만 지금처럼 스트리밍 서비스도 아닌 손바닥보다도 작은 핸드폰 DMB화면으로 그렇게 나홀로 열광했다.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은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기사에서 종종 언급되고 야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바로 그 홈런. 나지완이 밥 먹듯이 타팀 팬들에게 비호감을 사고, 득점권 기회를 와르르 무너트려도 기아팬들의 마음 한켠에 있는 애증의 나비,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이다.
09년도 호랑이는 울부짖었다. 팬들도 모두 울었다. 한 때 최강이었던 호랑이가 모기업의 사정으로 휘청이고, 선수를 나눠주고, 이름을 바꾸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 하던 때 부터 기다려 왔던 순간인 것이다.
그런 짜릿한 우승 때문일까, 이후 좋지 않은 모습으로 기아타이거즈의 위기에도 팬들은 돌아서지 않을 수 있었다. 에이스의 자해로 16연패를 당할 때도, 우승 전력이라 평가받던 12시즌 시작 전 레전드가 돌연 은퇴했을 때도, 트레이드 이후 '김상현의 저주'로 폭락 하고 '타어강의 저주'로 나락까지 떨어질 때도 그 때 그 기억으로 타이거즈 팬들은 최강기아를 외쳤다.
이번 시즌은 '갸레발'이 아니었다. '정말로!' 달랐다. 그라운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센터라인(Center-line : 포수, 2루•유격수, 중견수)이 몰라보게 바뀌었었다. 기아 2루 베이스의 자동문을 고장낸 장본인이자 하고싶은거 해도 되는 민식이(김민식 포수)가 트레이드로 합류하고 신용병 버나디나가 구용병 브렛필의 매직으로 크레이지 모드에 들어갔다. 유격수는 수비나 잘 하랬더니 타격왕까지 하고 있고, FA최형우가 전반기만에 100억 몸값을 톡톡히 해주었다. 임기영은 뜻 밖의 선물이었고 헥터와 양현종은 여전했다. 외에도 이명기, 안치홍, 팻딘 등이 잘해주며 전반기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어제의 경기에서 그들은 더이상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한 경기 결과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달려온 한 시즌, 아니 후반기 반시즌의 모습을 보면 팬으로써 답답한건 사실이다. 이길 수 있는 경기때마다 블론세이브, 역전패로 분위기를 끊고 소심한 득점지원으로 에이스의 컨디션을 다운시켰다.
아직도 잊지못하는 9월 3일 고척돔. 한창 잘나가던 전국구 구단 기아타이거즈의 일요일 경기에 만원관중으로 보답한 팬들. 그러나 7대1로 리드하던 경기는 9회말에만 7점을 내줘 7대8로 역전패를 당했다. 더 쓰리린 것은 그날 헥터는 7이닝 1실점으로 당연히 승리를 챙겨갈 줄 알았으나 승리를 날렸고 잠시 부진에 빠졌다가 타격감을 쭉쭉 끌어올리고 있던 이명기는 당하지 않아도 되는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후 타이거즈 팀 분위기는 처질 대로 처지게 되었다. 불안 불안 하던 문제점이 드디어 수면위로, 그것도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올랐다. 이후 9월 한 달 새 1위의 위엄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말았다.
챔피언스필드가 100만관중을 처음으로 돌파하며 열정적인 성원을 보내는 팬들을 뒤로한 채 김기태 감독은 그곳을 자신의 실험실로 사용해왔다. 기록? 무시할 수도 있다. 선수에게 믿음? 당연히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이 사라질대로 사라져 '1년에 10분정도 잘하는 선수'로 팬들 사이에서 고개를 젓게 만드는 선수들이 중요한 타이밍에 전광판에 올라오는 걸 종종 보았다. '아, 그러면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러겠구나...!!' 하며 기대를 걸어보지만 역시나 그런 반전은 없었다.
이름 자체에서오는 불안함과 상대방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왜 굳이 사서 했는 지 모르겠다.
기아는 이름값 있는 선수들이 많고 올 시즌 한 번씩 존재감을 뽐냈던 그들이기에 그 자리에서 무작정 못한다고 뺄 수 없는게 사실이다. 그래서 감독도 부진에 빠져있는 주전 선수앞에 기회가 왔을 때 대타를 기용 하지 않고 믿음을 주는 거다. 하지만 결과는.... 많이 답답한게 사실이다. 그런 믿음의 야구에 응답했던 선수들도 있고 그러지 못하고 있는 선수도 있다. 이건 팬도 감독도 선수도 어찌 할 수 없었던 결과임을 인정해야한다. 그런 선수들이 미친 존재감을 뿜어내 주었기에 기아가 6개월 내내 1위를 지킬 수 있었던 거니까.
공동이라지만 아직 기아 타이거즈는 1위다. 감독과 선수들은 시즌 1위를 하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게 목적 아닌가? 그러니 과정이야 어째 됐든 큰 경기를 위해 턱밑까지 실험 한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마지막까지도 힘을 실어주고 싶다. 잘잘못은 마지막 결과를 보고 판단하려 한다. 이 모든것이 통합우승을 위한 김기태 감독의 큰그림이었기를 바란다.
p.s. 마지막 남은 여섯경기 최선을 다하자 질 때 지더라도 영봉패, 9회말 7점차 역전패 따위는 하지말자. 그렇게 지고 2위를 한다면 그건 1위팀이 미칠정도로 잘 한거니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자.
기아타이거즈 기사만 나오면 지역과 팀을 비하하는 악플이 판을 치지만 타이거즈 때문에 울고 웃고 살아가는 팬들이 많고 응원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출처 : http://naver.me/xlqmMWZ4